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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논쟁(1)-마한과 전라도
    정책에세이 2024. 1. 2. 19:11

    <전라도 천년사> 발간에 앞서 시민단체민족사학자 진영과 주류사학자(소위 강단사학자) 간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취지로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전남전북광주 등 호남권 3개 지자체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에 걸쳐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의 편찬 사업에는 역사문화예술 각 분야 전문가 213명의 집필진이 참여하였으며 책의 분량은 3413,559쪽에 달한다.

    논쟁이 진행 중인 이유는 이 책의 고대사와 관련된 부분 때문이다. 책에서는 전라도 지역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고 오랫동안 마한세력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고 기술한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되는, <일본서기>에서 일본이 백제에 되돌려 주었다는 임나4현의 지역명을 원용하여 지금의 전남 동부지역을 마한시대의 전라도 지역으로 비정(비교하여 정함)하고 있는데 이것이 <전라도 천년사>를 둘러싼 고대사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우리의 <삼국사기>는 마한이 AD 9년에 백제에 의해 멸망했다고 하는데 왜 <일본서기>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마한의 존재를 굳이 6세기까지 인정하는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마한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왜 굳이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 <일본서기>에서 일본이 백제에 반환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임나4현의 지명을 원용하여 전라도 동부지역을 당시의 마한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라도 천년사> 선사고대 3126쪽과 55쪽에 기술된 다음의 예를 보자.

     

     

    남해안권에서는 6세기 초에 광양 마로산성이 축조되고 이어 순천 검단산성과 여수 고락산성 등 백제 산성이 축조됨으로써 금강에서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전라 동부 지역은 확고한 백제 영역이 되었다. <일본서기> 계체기 6(612)에는 백제가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 4현을 확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6세기 초 백제 산성이 축조되었던 여수, 순천, 광양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선사고대 3126).

    나는 상다리하다리를 여수반도와 돌산도에 비정하고자 한다. 하다리는 돌산도에 있던 백제의 돌산현, 상다리는 여수 폐현이다. 여수는 고호 원촌猿村인 바, 이는 일본해읍이었던 현의 비칭이다. 사타는 순천의 고호 삽평歃平사평沙平과 같다. =, =(훈 돌)가 된다. 모루는 마로현馬老縣(광양)에 대응된다. 이렇게 보아 나갈 때 임나4은 섬진강 하류 이서의 광양순천여수돌산도 일대가 된다(전영래, <백제 남방경역의 변천>, 146).(선사고대 355).

     

    윗 문장은 마한세력이 6세기까지 여전히 융성했다는 사실과 <일본서기>에 일본이 백제에 반환해 주었다고 기록된 임나4현 즉,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 지역이 현재 전남 동부지역인 여수, 순천, 광양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일본사 지도>, 吉川弘文館, 2010, 東京에 나타난 임나4현의 위치, 우리 학계는 이와 달리 여수․순천․광양 일대를 임나4현으로 비정하고 있다.                                                                  출처: 한문화타임즈(http://m.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07)

     

    이러한 논쟁에 대해 주류사학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AD 9년 마한 멸망설을 그대로 믿는 것은 삼국사기 자체의 기록과 모순되고 또 고고학적 증거에도 배치된다고 설명한다. , 삼국사기에 의하면 마한은 BC 2~3세기 건국되어 AD 8~9년경 백제 온조왕이 복속하였다고 하면서도 고구려 6대 태조대왕이 마한과 연합하여 현도성을 공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자체적으로도 모순되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라도 지역에서 발굴된 당시의 유적과 유물을 보면 백제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류사학계는 전라도 지역에 마한이 6세기까지 존속했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를 참고하면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을 현재의 여수순천광양 등의 전라도 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전라도 천년사>는 6세기까지 마한이 전라도 지역에 존재했다고 애써 주장하는 것일까?

     

    참고자료

    전남타임스(2021.11.17.). 마한으로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를 열자.

    전라도 천년사 홈페이지(http://jeolladoh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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