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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논쟁(2. 끝)-왜 마한인가?정책에세이 2024. 1. 15. 16:25
<전라도 천년사>에서 전라도 지역이 6세기까지 마한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기술하여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관련하여 내가 갖는 의문은 왜 주류사학계가 전라도 지역에 존재했었던 마한의 존재를 그토록 부각시키려 하는 것인가이다. 그것도 주류사학계 내에서 조차 공식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인용하면서까지 말이다. 나는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류사학계의 인식을 존중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수많은 문헌연구와 고고학적 증거에 기반 한 주류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기반한 결론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류사학계는 자신들이 사료로써 <일본서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왜 마한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일본서기>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강력한 근거가 되는 임나4현의 지명을 근거로 현재의 전라도 동부지역을 6세기까지 마한의 영향권에 있었던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류사학계와 대척점에 선 민족사학계 측은 주류사학계가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마토 왜의 한반도 지배설을 인정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이것이 마한을 전라도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전라도 지방정부 당국의 의도와 실제 전라도 지역에 위세를 떨쳤던 것으로 보이는 왜의 실체를 부정하기 어려운 주류사학계의 인식이 결합된 결과로 보고 싶다(이와 관련하여 나주 복암리 고분 발굴을 계기로 ‘마한 800년의 역사’가 개념화 되면서 이것이 지역적인 욕구와 맞물려 ‘마한 붐’을 일으켰다는 의견이 있다). 나는 이를 주류사학계가 식민사관에 경도된 것에서 비롯된 결과라 보지는 않는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입된 식민사관적 역사관이 해방 후 8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완전히 극복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류사학계의 학자들이 굳이 일본의 식민사관을 맹목적으로 신봉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출처: 영암신문(yasinmoon.com) 백제를 관광 상품화 한 충청도에 비해 전라도를 백제 문화의 중심지로 인식하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전라도를 6세기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와 대등한 세력을 구축한 마한세력이 지배했던 지역으로 규정하게 되면 전라도가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호남권의 지방정부가 <일본서기>의 기록을 빌어서라도 전라도 지역을 마한의 독자적 지배지역으로 규정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남타임스에 게재된 “마한으로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를 열자”는 제목의 칼럼이 마한의 역사를 이용해 전라도 지역을 관광문화도시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또 2010년 한․일 역사학계가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하였다고는 하나 왜가 고대에 전남과 경남 지역에 일정부분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 주류 사학계의 인식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광개토대왕비가 조작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라와 왜가 수차례 전쟁을 벌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왜5왕(찬, 진, 제, 흥, 무)의 존재 및 이 왜5왕 중 진이 438년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 6국 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을 칭하거나 중국 송나라가 451년 왜왕 제를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6국 제군사 겸 안동장군을 제수한 기록, 그리고 양직공도 제기(장경(張庚. 1685~1760)이라는 사람이 모사한 청장경제번공직도의 내용)에 신라가 한韓이나 왜의 속국이었다는 기록 등을 보면 당시 왜의 세력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의 왜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졌는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마한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소위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이 폐기된 마당에 <전라도 천년사>가 굳이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4현의 지역명을 전라도 지역으로 비정하려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이것이 마한을 전라도의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면 더욱 더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개념이나 용어의 정의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이용되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4현의 지명을 전라도 지역에 비정하는 것은, (주류사학계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주류사학자들 자신들도 사료로써의 <일본서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말이다.
전라도 지역민의 반대가 있고, 정치권에서도 <전라도 천년사>의 발간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아직 마한 800년 설을 정설로 받아들일 만큼 문헌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된 바가 없다면 이 참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확실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후에 <전라도 천년사>가 발간되어도 늦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라도 천년사>는 호남의 지방정부들이 예산을 지원하는, 소위 관官이 편찬하는 역사서의 성격을 띤다. 그런 무게를 갖는 문헌에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 ‘가설’을 정설로 오독할 수 있게 기록하여 그것이 차후에 한일 관계의 역사를 잘 못 해석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면 그 후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논의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지금의 논쟁을 소모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건설적 과정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마한의 역사적 기록을 제대로 밝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경향신문(2008.08.22.). 고고학자 조유정과 떠나는 한국사 여행-(10)나주 복암리 下 -마한의 수수께끼.
무등일보(2023.09.06.). “마한 멸망시기, 연구방법 이해 차” vs "마한 존속기간 연장, 학자 의견에 불과“
서울신문(2011.08.23.). ‘양직공도’서 신라ㆍ고구려 제기 발견돼.
전남타임스(2021.11.17.). 마한으로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를 열자.
전라도 천년사 홈페이지(http://jeolladohistory.com).
프레시안(2008.12.08.). 안동대장군 왜국왕,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41> 안동장군 신라제군사 왜국왕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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