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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각제 이야기(8)-장면 내각
    내각제 2025. 7. 2. 15:29

    허정 과도정부에서 의원내각제로 개헌이 이루어진 후, 19607.29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2공화국의 대통령은 윤보선이, 내각을 이끄는 총리는 장면이 맡았는데 대통령과 총리 자리는 당시 민주당의 구파와 신파 간 타협의 산물이었다. 당초 구파는 자파인 대통령직에 윤보선, 총리직에 김도연을 앉힐 계획이었고, 신파는 대통령직을 구파에 양보하는 대신 총리직을 갖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절대다수로 대통령에 먼저 당선된 윤보선은 김도연을 총리에 지명하였다. 그러나 민의원 표결에서 김도연 인준이 부결되자 윤보선은 신파인 장면을 총리직에 지명하였고 민의원 표결에서 장면이 총리로 인준 받았다. 민주당 내 신구파 파벌의 갈등과 분열은 2공화국의 불안정을 가져온 요인이었고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이 사실상 군사정변을 수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6620

     

    상징적 존재에 머물러야 했던 대통령 윤보선의 정치행보를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요인으로 2공화국 헌법을 들 수 있는데 2공화국 헌법에서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일반적 의원내각제에 비해 독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에서 국왕이 의회 개회식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각의 주요정책을 국왕의 연설이라는 형식을 빌린 것이라는 점에서 2공화국의 헌법 규정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러한 규정은 한편으로 통합의 상징으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은 민감한 사안에 의견을 표명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민주당 내 신파와 구파의 갈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민주당 신파와 구파 간 계속된 갈등의 원인을 총리직을 가져간 신파가 당초 약속과 달리 내각을 신파 중심으로 구성한 데서 찾기도 한다. 장면 총리는 823일 조각에서 단 1석만을 구파에 할애함으로써 신파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구파가 이에 반발하고 신파 내에서도 소장파의 비판이 뒤따르자 조각은 10여일 만에 개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912일 신파와 구파의 균형을 맞춘 개각이 이루어졌으나 양 계파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사실 말만 같은 당이었지 서로 함께 할 수 없었던 구파와 신파의 갈등이 극에 달한 19601018일 구파가 신민당을 창당하여 독립함으로써 두 계파 간의 분열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구파의 창당 이후에 신파의 민주당 내에서도 새로운 파벌들 간의 분열은 계속되었다. 개각 이후 장면 정권은 1961120일과 530일 두 차례 더 개각을 단행하였다. 이는 불안정한 장면 정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결국 이러한 민주당의 불안정한 정국운영은 5.16 군사정변을 촉발하게 되었다.

     

    강원택(2009). 2공화국 내각제의 불안정에 대한 정치제도적 평가. 한국정치회교사논총, 30(2): 45-70.

    노찬백(1996). 장면정권의 위기관리. 호남정치학회보, 8: 1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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