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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을 두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여부에 관심이 크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그리고 간호사 간 주장이 첨예하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일까? 국민의 건강권일까?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모두 자기 업역지키기에 바쁜 것이 현실이다.
일찌기 제임스 윌슨은 규제로 인한 감지된 편익과 감지된 비용에 따라 규제의 4가지 정치적 상황을 유형화하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간호법 갈등은 그가 유형화한 이익집단 정치의 전형이다.
정작 건강권에 대한 이해관계가 큰 국민들은 집단행동의 딜레마로 손 놓고 있는 사이 간호법은 이해관계자들의 타협과 협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의사
간호법에 규정된 '지역사회' 문구를 두고 의사단체는 간호사들이 개원해서 의사노릇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우에 불과하다. 국민이 의료와 간호를 구분 못하겠는가? 간호사들도 밥줄이 끊기는데 굳이 의료행위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의사들 주장대로 간호법에서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는 있지만 현행 의료법에서도 간호사의 업무범위는 그리 명학하지 않은 것 같다. 간호사들의 진료보조 행위의 범위가 명료하지도 않고 사법적 판결로 결정되는 사례가 그 방증이다.
의사들이 간호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간호'가 '의료'와 동격으로 대접받는 게 마땅찮다. 간호법을 간호사법으로 바꾸자는 중재안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사의 진료보조인에 불과한 간호사가 '간호'라는 타이틀을 단 법으로 '의료'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는 게 영 불편한 것이다.
또 의사들은 간호사들이 향후 노인 인구 증가로 성장이 불가피한 의료서비스 산업에서 독자적인 사업영역을 확보하게 될까 두려워 한다. 간호법에서 '지역사회'라는 문구를 기어이 삭제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간호사들이 이 규정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간호사들의 의료행위를 묵과할 국민이 있겠으며 밥벌이 끊길 줄 알면서 의료행위를 강행할 간호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의사들 보기에 간호사들은 의료기관에서 의사의 지도 하에 의사를 보조하는 인력일 뿐인데 의사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간호돌봄센터같은 시설을 개원하는 것이 영 마뜩찮은 것이다.
간호조무사
간호조무사들은 할 말이 많다. 실무에서 간호사와 별 차이 없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차별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간호조무사가 증가한 것은 박정희 시대에 간호사 파독으로 간호사 인력이 감소하여 이를 충원하기 위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정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도 묵인 하에 간호조무사들이 실제 간호사들의 업무를 일정부분 수행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하며 진료보조는 간호사의 고유업무지만 의원급의 경우 예외적으로 간호조무사들이 의사들의 진료보조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구 잘못일까? 왜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들이 해야 할일을 하면서도 간호사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의료분야의 시장논리다. 간호사를 채용하면 비싼 임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에 대해 현행 우리나라 건강보험수가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선발기준이나 교육과정 자체가 다르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간호조무사들은 그들이 간호사와는 다른 직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따른 직급체계와 보수차이 등을 인지하고 간호조무사에 지원한 것이다. 그렇기에 실무경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간호사로 전환시켜 달라는 요구는 조금 과한 듯 하다.
간호조무사 측은 특성화고 간호조무학과 졸업생에게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면서 전문대의 관련 학과 졸업생에게는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간호법 제정안은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국가자격시험 응시에 학력차별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대 졸업자에게 공식적으로 응시자격을 부여할 경우,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오히려 학력을 이유로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에 따르는 차별을 감수할 각오로 그러한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간호사
간호사는 간호법 제정으로 분명히 얻는 것들이 있다. 우선 간호를 독자적으로 법체계에 안에서 다루게 되면서 간호를 종속적인 지위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그 위상을 높였다. 그리고 법 제정으로 열악한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단체는 지도와 보조라는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의료와 간호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취지에서 간호법을 만들었으면서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관계는 지도와 보조, 상위와 하위라는 관계로 묶어두려 하고 있다. 간호조무사의 시험 응시자격을 공식적으로 고졸로 제한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간호조무사들이 상당수인 상황에서 굳이 법제도로 간호조무사의 응시자격을 고졸로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가 발전하는 길은 모든 주체와 환경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우리사회를 업그레이 시키려기보다 다들 남 잘되는 꼴은 못보겠다는 형국이다. 상대가 잘 되면 내 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체면문화가 발현되고 있다. 작고한 이건희 회장이 일찌기 이러한 우리문화를 일갈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서 가려는 사람은 그냥 두면 되는데 자꾸 다리를 잡고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지역사회 간호돌봄 서비스를 두고 간호사와 경쟁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보조 인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간호사와 경쟁하는 게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서 그러한가?
간호사는 공식적으로 학력 높은 간호조무사를 인정하면 안되는가? 의사의 지도 하에 간호 업무를 하는 것처럼 간호사의 지도 하에 간호조무사는 간호업무를 보조해야 격에 맞는 것인가?
애초 다른 업역인 줄 알고 선택한 직업이면서 경력을 이유로 간호사의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간호조무사의 요구는 합당한가? 특전사에서 잔뼈가 굵은 특전 부사관들이 30년의 특전경력을 이유로 장교로의 전직을 요구하는가?
선택에는 차별적 결과가 수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차별적 결과를 감수하면서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러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도 않고 선택의 장에서 경쟁을 통한 성과를 창출할 수 없는 곳에서는 차별적 결과를 공평하게 하려는 데만 헛힘을 쓰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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